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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가르주나(龍樹)의 생애와 저술
작성자 관리자 조회수 1108 작성일 2016.04.18
내용

나가르주나(龍樹)의 생애와 저술

 

1. 생애


1) 쿠마라지바(344-413) 역 <용수보살전(龍樹菩薩傳)> 산스크리트 원전에서 한역한 것. 원전은 남아있지 않다. 대정신수대장경 제50권. 이 자료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본이나 티벳어본은 전하지 않는다.
2) 티벳의 부톤(1290-1364)이 저술한 <불교사>에 포함된 나가르주나 관련 기사
3) 티벳의 타라나타(1575-1615)가 저술한 <불교사> 가운데 나가르주나에 관한 서술
고대의 인물에 대한 기록이 흔히 그러하듯이 나가르주나의 전기 역시 신화적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2)와 3)의 경우가 심해서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느 부분이 허구적 전설인지 가려내기가 어렵다.

비교적 그 정도가 덜한 쿠마라지바의 번역을 중심으로 나머지 전기와의 공통 부분 등을 참고해서 그의 생애를 간략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확정하기 힘든 역사적 사실을 고려해서 정보를 취사 선택할 수는 없었다.

허구는 허구대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므로 사실과 허구가 선택의 기준은 아니라는 의미이다. 

 

나가르주나는 바라문 계급 출신으로 남인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했기 때문에 바라문들이 베다를 낭송하는 소리를 듣고 바로 그 문장을 암송하고 뜻을 이해했다. 그는 다방면에 재능이 있었는데 천문, 지리, 예언 등 여러 가지 비술을 체득하고 있었다.
세상의 깊은 진리를 통달했다고 생각한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감각적 쾌락을 추구하고자 은신술을 익혔다. 그들은 방술을 이용해서 왕궁에 들어가 궁중의 미녀들을 모두 범했다. 몇 달 후 후궁 가운데 임신한 사람이 생기자 왕은 범인을 잡을 것을 명령했다. 마침 지혜로운 신하가 있어 침입자들을 처단할 수 있었으나 나가르주나만은 용케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나가르주나는 비로소 욕망이 고통의 근원이며 재앙의 뿌리라는 것을 깊이 깨닫고 출가하였다. 그는 경, 율, 논, 삼장을 독송하고는 또 다른 경전을 찾았으나 얻지 못했다. 히말라야에 들어가 한 늙은 수행자로부터 대승 경전을 전해 받고 즐겨 암송하고 그 뜻을 이해했으나 아직 완전히 통달하지는 못했다. 이후 나가르주나는 인도 전역을 편력하면서 경전을 구해보는 한편 외도의 논사들이 주장하는 교의를 논박하고 복종시켰다.


외도의 제자가 나가르주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스승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一切智人]인데 지금 부처님의 제자가되어 있습니다. 제자를 자처하는 것은 자신에게 부족한 점이 있음을 자인하는 것입니다. 만약 스승께서 부족한 것이 있다면 일체지인이 아닙니다.” 그 말은 들은 나가르주나는 굴욕감을 느끼고 교만한 마음을 냈다 : “이 세상의 가르침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뛰어나기는 하지만 아직도 철저하지 못한 점이 있다. 그러한 것들을 바로 잡고 보완하여 바른 법을 널리 편다면 또한 옳은 일이 아니겠는가?” 이리하여 나가르주나는 가르침과 계율을 [다시] 세우고 의복과 의식을 독자적으로 만들어 기존의 불교 교단과 약간의 차이를 두었다. 그는 홀로 수정으로 된 방에 거처하면서 새로운 계율과 의례에 따라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대룡보살은 나가르주나가 아만심에 차 있는 것을 보고 측은히 여겨 그를 바다 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용궁의 칠보로 장식한 창고를 열어 대승의 경전들을 보여주었다. 나가르주나는 이것을 받아 석 달간 읽고 그 뜻을 두루 통하였고, 이윽고 여러 경전이 든 상자를 하나 얻어 본래 생멸이 없다는 무생의 법을 체득했다. 남인도로 돌아온 나가르주나는 외도를 복종시키고 크게 대승의 불법을 폈다. 여러 차례의 논쟁을 통해 많은 왕공과 장자, 브라만들을 불교에 귀의시켰다.
소승불교의 한 법사가 나가르주나에게 대해 앙심을 품고 있었다. 나가르주나가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내가 이 세상에 오래 머물기를 바랍니까?” 소승법사는 그의 장수를 바라지 않는다고 하자 나가르주나는 조용한 방으로 들어가 며칠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제자들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니 매미가 허물을 벗은 듯이 죽어 있었다.
나가르주나가 세상을 떠난 지 백 년이 지났는데 남인도의 여러나라에서는 그를 위해 묘를 짓고 부처님과 같이 공경하며 섬기고 있다. 그의 어머니가 아르주나라는 나무 아래에서 그를 낳았으므로 아르주나라고 하며, 용이 그의 도를 완성시켰으므로 나가[龍]라고 이름지었다. 이리하여 그의 이름이 나가르주나가 된 것이다.

 

2. 저술


비판적으로 고찰할 때 나가르주나가 저술했다고 알려진 논서 가운데 논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은 대체로 다음에 한정된다.

1)『중론송』(中論頌, Madhyamaka-karika) 27장 449게송(한역은 445게송)으로 구성된 나가르주나의 주저이다.
2)『십이문론』(十二門論, Dvadasa-dvara-sastra) 한역만이 현존한다. 공사상을 열두 가지 항목으로 서술한다. 내용상으로는 위의『중론송』을 발췌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공칠십론』(空七十論, Sunyata-saptati) 티벳역만이 남아 있다. 공사상을 70개의 게송으로 노래한 것.
4)『회쟁론』(廻諍論, Vigrahavyavartani) 정통 바라문 계통인 니야야 학파의 사상을 비판하면서 공사상을 현양한 비판서. 70개의 게송과 주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 티벳역, 한역이 남아 있다.
5)『육십송여리론』(六十頌如理論, Yuktisastika) 60개의 게송으로 공사상을 천명한 저술. 한역과 티벳역이 있다.
6)『대지도론』(大智度論)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대품반야경』(大品般若經)에 대한 주석서. 경전의 단순한 주석이 아니라 나가르주나의 해석과 사상을 경에 기탁해서 드러낸 것이다. 저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쿠마라지바의 한역만이 남아 있다.
7)『십주비바사론』(十住毘婆沙論, Dasabhumi-vibhasa-sastra) 쿠마라지바의 한역만 남아 있다.『십지경』(十地經)에 대한 주석으로 아미타불에 대한 염불 등 신앙을 위주로 한 수행론을 설하고 있다. 후에 정토사상의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8)『대승이십송론』(大乘二十頌論, Mahayana-vimsika) 유심 사상이 서술되어 있다. 20게송으로 된 단편이다. 산스크리트 원전, 티벳역, 한역이 있다.
9)『보리자량론』(菩提資糧論) 깨달음을 얻기 위한 여러가지 요건을 서술한 것. 한역만 있다.
1 0 ) 『인 연 심 론 』( 因緣心論,Pratityasamutpada-hrdaya-karika) 7개의 게송으로 연기설의 요체를 드러낸 글. 산스크리크 원전, 티벳역, 한역이 있다.
11)『친구에게 보내는 편지』(Suhrllekha) 남인도 사타바하나왕조의 국왕에게 쓴 서간 형식의 시가. 왕의 처신에 대한 조언이 실려 있다. 티벳역이 있고, 세 종의 한역이 전한다.
12)『라트나발리』 (Ratnavali)역시 왕에게 보내는 조언을 서간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산스크리트 원전, 티벳역, 한역이있다. 한역의 제명은『보행왕정론』(寶行王正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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